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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9. 9世 〉19. <태사공>증통훈대부사헌부지평공휘우묘표(贈通訓大夫司憲府持平公諱瑀墓表)
1. 문헌 목록 〉10. 10世 〉1. <요재공>둔세암공휘윤옥묘표(遯世菴公諱潤屋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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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태사공>만호공휘벽사단비(萬戶公諱壁祀壇碑)
萬戶公諱壁祀壇碑 昔河南程夫子生乎文明之世猶有無百年古家之歎矣况我東土 穆陵兵燹震爚之餘乎謹按公諱璧字完之官萬戶系出玉川高麗檢校大將軍諱璋爲昉祖也至三世諱璵金紫光祿大夫太師特進上柱國檢校門下侍中同平章事遂族望於國寔公之七世祖也歷二世諱淵八 太宗朝吏曹判書諱膺號伴驅亭議政府舍人諱得才號敦睦齋司正諱長孫通訓大夫行高原郡守即公之高曾若祖稱也妣淑人浹溪太氏兵判石蘭外祖也噫以司正通訓兩公之世攷之則公生于明宣之際而譜失生卒墓無傳焉而令人潭陽田氏亦入同轍嗚呼惜哉余於公未得當世視履考跡然觀南山之橋足可以驗北山之梓矣文獻之傳與不傳大有關於世道之隆汚杞宋之無徵奚足怪哉盖祭禮之由來久遠矣如於廟及乎野禮之正也野無徵而祭於壇禮之權也雖然爲其子姓之苟無寓墓之所則烏可己乎將無己也則不可無者記也日公之遠孫東一東元東學東煥哲勳訪其族孟翼相翼於完山同車遠來徵文於余顧非其人辭不獲依狀叙之如右系以一言奉諗于左右凡爲人之祖光難也而亦爲人之子孫尤其難矣况爲賢祖之肖孫乎念祖修德專在乎誠敬非誠敬則祖光之靈與子孫之誠何以協合感通耶惟玉川氏勿以灌獻爲能事而致誠致嚴念念在玆永年勿替是所望焉 檀紀四千三百十五年壬戌流火月 全州 李亨求 撰 만호공휘벽사단비 (萬戶公諱璧祀壇碑) 옛적에 하남정부자(河南程夫子) 선생께서 문명시대(文明時代)에 낳으셨으되 오히려 백 년 된 옛 집이 없음을 한탄(恨歎)하시였거늘 하물며 목능(穆陵)도 임진병선(壬辰兵燹)을 겪은 바 있었으니 무슨 말을 다하랴. 삼가 안찰(按察)하니 공(公)의 휘(諱)는 벽(璧)이요 자(字)는 완지(完之)요 관(官)은 만호(萬戶)이시니 선계(先系)는 옥천씨라 고려(高麗)때에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이신 휘에 장(璋)은 시조(始祖)가 되다. 삼세(三世)에 이르러 휘(諱) 여(璵)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사특진상주국(太師特進上柱國) 검교문하시중평장사(檢校門下侍中平章事)이시니 드디어 씨족(氏族)이 국중(國中)에 명망이 높으니 공(公)의 七世祖라. 二世를 지내여 휘(諱) 연(淵)은 태종조(太宗朝)에 들어 이조판서(吏曹判書)요 휘(諱) 응(膺)은 호에 반구정(號伴驅亭)이며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이요 휘 득재(諱得才)는 호에 돈목재(敦睦齋)니 사정(司正)이요 휘의 장손(長孫) 통훈대부(通訓大夫) 고원군수(高原郡守)이시다. 곧 공의 고조 (高祖) 증조(曾祖)이시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시라. 어머니는 숙인(淑人) 협계태씨(浹溪太氏)이시니 병조판서(兵曹判書) 석란(石蘭)은 외조(外祖)라. 슬프다. 사정(司正) 통훈(通訓) 두 공(公)의 세대로서 상고하면 공이 명종(明宗) 선조(宣祖) 무렵에 낳으셨으려니 보첩을 생졸(生卒)을 잃고 묘(墓)는 전(傳)함이 없으니 영인(令人) 담양전씨(潭陽田氏) 또한 같은 수레바퀴에 들었도다. 슬프고 애석토다. 내 공의 당세 이력을 보지 못하였거니와 남산에 우러러 서 있는 교목(橋木)을 보니 가히 북산(北山)에 구부리고 있는 지목(梓木)을 보기와 같도다. 문헌(文獻)의 전(傳)하고 전하지 못함은 크게 세도(世道)의 성쇠(盛衰)에 유관(有關)되는 것이니 기(杞)나라 송(宋)나라의 증거 없음을 어찌 괴히 여기리랴. 대게 제례(祭禮)의 유래(由來)는 오래이고 또한 멀기도 하다. 사당(祠堂)에서 비롯하여 묘(墓)에까지 미처 옴은 예(禮)에 바름이요 묘증거(墓證據) 없으면 단(壇)에 제사(祭祠)함이 예(禮)의 권도(權道)라. 비록 그러하나 그 자손된 자 진실(眞實)로 추모(追慕)할 곳이 없다하여 어찌 방심(放心)하랴. 장차(將次)라도 이의 뜻을 가질진대 가히 없어서는 아니 됨은 기록(記錄)이라. 어느 날 공의 후손(后孫) 동일(東一) 동원(東元) 동학(東學) 동환東煥) 철훈(哲勳)이 그 일가 맹익(孟翼) 상익(相翼)을 완산(完山)에서 만나 수레를 같이하여 멀리와 나에게 글을 청하거늘 사양(辭讓)타 못하여 본장(本章)에 의하여 폐기를 위와 같이 하고 이어서 한말(一言)로 좌우(左右)에 받들어 고(吿)하노니 무릇 사람의 조선(祖先)되기는 어려웁고 또한 사람의 자손(子孫)되기 더욱 더 어려우니 하물며 어진 조상(祖上)의 어진 후손(后孫)됨이랴 조상을 생각하고 내 몸에 덕(德)을 닦음은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에 있나니 정성과 공경이 아니면 조선(祖先)의 영(靈)과 자손이 어찌 합(合)하여 감동(感動)하여 상통하랴. 오직 옥천씨(玉川氏)는 관주(灌酒)하고 헌작(獻酌)함으로서 능사(能事)라 하지 말고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을 다하여 생각을 이에 두어 긴 해에 영원(永遠)토록 침체(沈滯)치 않기를 바라는 바다. 단기四千三百十五년 임술七月 전주 이형구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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